[기획] '위기의 세무사' ⓵기장료 20년 제자리…“세무사업 끝났다”?
- 2020년 국세통계연보, 세무사 연 수익 아직도 8천만원대…적자에 폐업도 속출 - 식당 납품 계란값보다 못한 기장료…‘위기’ 경고등에도 대안 못 찾는 세무사회 - ‘삼쩜삼’ 무혐의 결정으로 회원들 고민 깊어져…세무사회, 어떤 해명·사과도 없어
최근 세무사 업계에서 “세무사업이 위기 상황에 처했다”는 목소리가 부쩍 많아졌다. 20년째 제자리걸음인 세무 기장료로는 직원 인건비조차 해결 안 된다는 하소연이 곳곳서 들린다.
그나마 낮은 기장료를 반값으로 후려치는 제살 깎아먹기도 다반사다. 인건비와 임대료 등을 제하면 세무사 수입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친다는 극단적 얘기도 나온다. 개업 연한이 짧은 세무사와 청년세무사의 경우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폐업하는 사태도 속출하고 있다.
지난달 세무사의 위기 상황을 적나라하게 지적한 ‘시대와 물가에 유일하게 역행하는 건 세무비용 뿐’이라는 한 세무사의 세무사회 홈페이지 회원전용 세정세법게시판 글이 화제가 됐다.
세무사업이 처한 절박한 상황을 가감 없이 표현해 많은 세무사들의 공감을 받았고, 큰 울림을 줬다.
그는 “21년 전 개업 당시 기장료가 신규개인 11만원, 중견개인 18만원, 신규법인 22만원 중견법인 33만원 이상이었다”고 운을 뗐다. “그런데 지금은 개인 5만원, 법인 8만원이라고 한다. 인터넷에선 개인 3만원, 법인 5만원이라는데 최저임금은 200만원에 육박한다”며 뒷걸음질하는 기장료에 절망감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음식점 기장관리 비용이 식당에 납품되는 계란, 채소값 보다 못한 상황”이라며 “기장을 맡기는 음식점업 대표가 과연 세무사를 어떻게 인식할까 궁금하다”고 세무업의 암울한 현실을 한탄했다.
이 세무사의 하소연은 대부분 세무사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감정이다. 젊은 세무사들은 더욱 그렇다.
통계치가 이를 대변한다. 국세청 국세통계포털의 전문직 부가가치세 신고형황에 따르면 2020년 법인 소속을 제외한 개인세무사 9060명의 총매출은 2조6993억원이었다. 1인 평균매출 2억9700만원 가량으로 적은 금액이 아닌 듯 보인다.
하지만 이 매출에서 직원 인건비, 임대료, 회계프로그램유지비 등 제반 부대비용을 제외하면 남는 게 별로 없다고 세무사들은 입을 모은다. 역삼지역의 한 세무사는 “어떤 업무에 치중하느냐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경비를 제외한 실질 수입은 총소득 대비 30% 안팎으로 보면 된다”며 “사무소 유지가 버거운 실정”이라고 말한다.
1인 평균매출에 순이익률 30%를 곱하면 2020년 세무사 실수입은 연간 8910만원 수준이다. 같은 기간의 개인 회계사 1인당 매출 3억9269만원, 1인 평균수입 1억1800만원에 훨씬 못 미치는 수치다.
‘세무사업 길어야 10년, 짧으면 5년’…자조 목소리
특히 개업 5년이 안된 청년세무사 등 신규 세무사들의 실질 수입은 이보다 훨씬 적을 것으로 추정된다. 10여 년 전 ‘개업 후 3년만 잘 버티면 웬만큼 자리가 잡힌다’는 얘기는 옛말이 됐다.
일각에서는 ‘길어야 10년. 짧으면 5년’이라는 자조의 목소리도 나온다. 종로지역 한 50대 중반 세무사는 “이제 세무사업은 끝난 것 같다. 10년 정도 현상 유지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한숨 짓는다.
업계에서는 세무사의 이런 저수익 구조가 업계 내부의 과당 경쟁과 함께 새로운 고수익 업무를 창출하지 못한 데 원인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수원 지역의 한 세무사는 “직원을 내보낼 수는 없고 인건비라도 해결해 보겠다는 절박감에서 기장료를 원가 이하로 후려치는 출혈 경쟁이 일어나는데 결국은 공멸의 지름길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또 “변호사들에게 세무조정 업무가 전면 허용되고, ‘법무법인은 (일반법인 세무사법보다 우선하는 특별법의 위치인) 변호사법 49조를 근거로 모든 세무대리를 할 수 있다고 해석될 수 있다’는 지적(김겸순 세무사회 감사보고서)을 접하며 착잡한 심경을 가눌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주력인 기장을 대체할 업무가 필요하다는 논의는 진작부터 있어왔다. 그러나 대안을 찾기 위한 한국세무사회의 움직임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비빌 언덕인 세무사회는 오히려 유일 소통창구인 자유게시판마저 닫아버렸다. 변호사의 기장 업무를 불허하는 세무사법 개정이 약속과 달리 2년간 통과시키지 못한데 대해 게시판에서 회장과 집행부를 비판하자 폐쇄했다.
회원들은 집행부가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하소연도 제대로 못하는 구조다. 공론의 장이 폐쇄되니 업계 발전을 위한 논의는 실종되고, 상호간의 무관심으로 참신한 아이디어도 사장된다.
화급한 처지의 회원들은 각자도생(各自圖生)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세무사와 세무사회의 이런 소통부재 속에 집단 무기력증 현상마저 엿보인다.
생존 담보하는 새 패러다임 만들어야 세무업 영속
이런 무기력증은 오로지 세무사회의 권력을 잡으려는 세력의 암투에 회원들이 염증을 느낀 때문이기도 하다.
세무사회장 선거 때마다 ‘세무사의 조세소송대리업무 추진’ 등 업역 확대 공약이 제시되지만 매번 공수표가 되고, ‘회원이 주인’을 외치지만 끝나면 찬밥이다. 제왕적 회장과 기득권 세력이 포진한 집행부만 존재할 뿐이다.
3년 7개월을 올인(all-in)해 개정한 세무사법도 현 집행부는 엄청난 성과라고 자화자찬 했지만 빛 좋은 개살구다. ‘개정 세무사법에 따라 곧 처벌’을 호언장담했으나 ‘삼쩜삼’ 플랫폼은 불기소 처분을 받았고, 세무대리를 막지 못했다. 무책임한 세무사회 집행부는 어떠한 해명도, 단 한마디의 사과도 없다. 세무플랫폼의 본격적인 세무대리 신호탄이 쏘아진 것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세무사들의 고민만 깊어지는 상황이다.
세무사법이 세무사를 지켜주는 ‘바이블’이던 시절은 이제 끝난 셈이다. 총체적 난국이다.
컨설팅과 고부가 세무자문 등 혁신 업무로 돌파구를 찾자는 소리는 요란하다. 하지만 기장으로 하루하루를 어렵게 버텨가는, 장래가 불투명한 젊은 세무사들에게는 막연한 ‘구호’로 들릴 뿐이다.
세무사업계와 달리 회계사업계는 2018년 최중경 전 회장의 표준감사시간제 전격 도입으로 업무 파이를 크게 키웠다. 회계사 인력난을 겪고 있다.
지난달 30일 출범한 ‘국가재정범죄 합동수사단’ 출범에 맞춰 로펌들도 기존 조세팀을 확대 개편하거나 ‘조세형사대응팀’을 신설, 조세분야 덩치를 키우고 있다. 시장 선점과 업무영역 확대 차원이다.
위기 탈출이 시급한 세무사업계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부분이다. 세무사의 생존을 담보하기 위한 한국세무사회의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