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 사각지대’인 유한회사의 투명성이 확보되는가 했는데 부처 간 손발이 맞지 않아 또다시 제자리걸음이다.
금융위원회가 최근 유한회사의 재정건전성과 특혜논란을 없애기 위해 제도개선안을 내놓았다가 규제개혁위원회(규개위)로부터 제동이 걸렸다.
17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즉 외감법을 개정해 유한회사도 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를 받도록 하고 이를 공시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하지만 규개위는 심의과정에서 ‘공시의무면제’를 권고했다.
결국 금융위는 한발 물러서 공시의무는 면제하고 회계감사만 받도록 하는 반쪽짜리 개선안을 법제처에 심사 요청하기로 했다.
사실 유한회사는 법인의 형식만 다를 뿐 주식회사와 같은 것인데, 외부감사와 공시를 면제받는 특권을 누려온 것이다. 금융위는 유한회사도 주식회사와 동일하게 '외부감사+공시의무'를 규정하는 법률안을 만들어 투명경영의 제도권으로 유도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규제위의 회의록에는 "감사보고서를 공시할 경우 외국 경쟁회사에 원가정보 등 영업비밀이 공개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대기업 등과 거래시 납품단가 인하 압력을 받게 될 우려가 있다"며 "미국, 일본, 이스라엘 등의 경우도 외감은 받지만 공시는 하지 않는다"는 외국계기업의 관계자 발언 내용을 받아들여 이날 회의에서 규제위 위원들은 유한회사의 편을 들어 준 것이다.
유한회사는 2011년 상법이 개선되면서 자본금 1000만원이상, 사원수 50인 이하 및 지분양도 제한 등이 없어 졌으며, 사채발행 제한 등 일부만 제외하면 주식회사와 차이가 없다. 여기에다 외부감사를 받지 않아도 되고 재무제표 공시의무도 없다. 따라서 회계처리기준도 알아서 정하면 된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으로 유명한 ‘옥시레킷벤키저’도 유한회사다. ‘옥시’를 비롯해 국내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들 상당수와 국내기업들도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간판을 바꾸는 사례가 늘어 나고 있다. 금융위의 분석 자료에 따르면 2007년~2012년 사이 외감대상 기업 85개가 유한회사로 간판을 바꿔단 것으로 집계됐다. 루이비통코리아, 한국피자헛,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대구텍 등 유명회사들이 유한회사로 변경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유한회사는 2010년 말 1만6998개였던 것이 2012년 1만9513개로 늘어났고, 2014년엔 2만5290개까지 증가했다. 4년 새 8000개가 늘어난 셈이다. 유한회사가 3만개에 육박하고 있지만 회계감사를 받지 않다보니 이들 회사가 얼마를 벌어 어떻게 쓰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받고 있다.
특히 유한회사 형태로 국내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들이 로열티나 배당금 명목으로 매년 거액을 본사로 보내고 있는 것은 잘 알라져 있지만, 투명성문제는 잠재되어 있다.
금융위가 어렵게 만든 유한회사 개선안이 반쪽으로 결론나자 경제정의실천연합 관계자는 “외국자본을 유치한다는 명목으로 완화한 유한회사 제도는 세제 등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차원에서 회계감사도 받고 이를 공시하는 완벽한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하는데, 회계감사만 의무화 할 경우 사회적 감시망을 피해갈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는 문제점이 여전히 남아 있게 된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