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세법개정안에 ‘세무조사 녹음권’ 신설 안이 포함되자 세무대리인들과 일부 정치인은 반대의견을 내놨다.
증빙이 미비할 경우 소명해야 하는 납세자는 녹음된 발언이 세금에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고, 세무공무원이 법적 테두리 안에서 허용할 수 있는 재량권도 크게 위축돼 외려 납세자가 불리할 것이라 게 반대 근거다.
한국세무사회는 지난 8월 2018년 세법개정안이 공개되자 곧바로 ‘세무조사 녹음권’에 대해 반대의견을 세제당국인 기획재정부에 제기했다. “최대한 신중할 필요가 있다”면서 제도 도입의 유예를 주장한 것이다.
세무사회는 “세무공무원의 위법‧부당한 행위를 막고 납세자의 권리보호 및 부작용(악용) 배제 등의 제도적 장치를 한층 강화한 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구체적인 반대 근거는 포함되지 않았다.
한국공인회계사회는 회계사로서 세무사 자격을 갖고 세무대리 영업을 하는 회원들의 입장을 수렴해보니 세무사업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밝혔다.
회계사회 관계자는 “세무조사 녹음권을 권리로 명문화 하는 것이 납세자에 오히려 불리하게 운영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고 밝혔다.
세무조사 공무원이 알고 싶은 내용은 확인서나 진술서, 납세자 답변 등을 통해 파악하는데, 정작 납세자가 억울하거나 궁금해 하는 사안에 대해 질문을 하면 조사공무원은 '녹음' 때문에 소극적이 돼 아주 원론적으로 얘기하거나 아예 회피할 수도 있다는 것이 불리함의 골자로 풀이됐다.
회계사회 관계자는 또 “납세자가 을인데, 세무조사 권한을 갖고 있는 과세관청에게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까”라며 현실성에도 의문을 제시했다.
그는 다만 “국세청측은 ‘세무조사에서 기업의 영업비밀이 녹음돼 기업도 싫어한다’는 근거로 반대 논리를 제시한다”고 관련 의견을 묻자 “세무공무원이 왜 기업걱정 하는 지 모르겠다”고 논리의 박약함을 짚어냈다.
세무대리인들은 “녹음 때문에 조사 공무원이 아주 원론적으로 얘기하거나 아예 회피하는 등 소극적으로 소통하면 납세자는 자신의 억울한 부분을 다시 소명하기 위해 조사공무원과 더 여러 번 만나야 하고 이 때문에 조사기간이 더 늘어나 심적 부담이 커진다”며 반론을 제시했다.
법리적 쟁점이 있는 사안이 생겨도 녹음을 의식해 양측 모두 최대한 원론적인 대화만 나눠 결국 소통의 질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결국 조사공무원도 납세자의 특수한 사정을 충분히 이해했더라도 녹음 때문에 세법 테두리 내에서의 업무 재량도 베풀기 힘들어질 것이므로 납세자가 불리해진다는 논리다.
조세 소송 경력이 많은 한 변호사는 기자에게 익명을 부탁하며 “딜(Deal) 해서 실적 냈던 실력 없는 이들이 세무조사 녹음권에 반발할 것”이라고 냉소적으로 논평했다.
한편 12일부터 본격 세법 심사에 착수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여야 간사들은 약속이나 한 듯 말을 아꼈다.
여당 간사인 김정우 의원실 관계자는 “따로 알려드릴 것 없다. 의원 일정 때문에 말하기 곤란하다. 의원 본인 견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의원실 차원에서 이를 밝힐 수가 없다. 의원이 필요할 때 언급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야당 간사인 추경호 의원실 관계자도 “의원실이 대외적으로 명확한 의사표시 한 바 없다. 의원께서 아직 보좌진에게 어느 쪽을 찬성한다는 걸 밝힌 바 없다. 양쪽 다 타당성 있는 것 같아서 양쪽 의견을 충분히 들어본 후에 결정하겠다는 것 같다”고 밝혔다.
기재위원 중 야당의 엄용수 의원이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엄의원실 관계자는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녹음권 도입에 부정적”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세무조사에서 공무원의 재량권이 오히려 제한돼 납세자에 불리할 수 있다”면서 “‘세정지원’이라고 완곡하게 표현되는 재량권이 제한돼 납세자를 오히려 옭아매는 결과가 전망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피의사실이 명백한 피의자에 대한 검찰 조사의 영상녹화와 세무조사는 다르다”고 덧붙였다.
엄 의원은 지난 10월10일 국세청 국정감사에서 “세무조사 때 녹음하는 정부 세법 개정안에 대해 국세청에서는 신중한 도입이라는 입장에 변함이 없죠?”라고 질의, 한승희 청장이 “세무조사는 국가의 고유작용으로 현장에서 부작용이 없어야 한다”고만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