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과 채찍’은 보상과 처벌의 은유다. 마차를 끄는 말 눈앞에 당근을 매달아 놓으면 고집 센 말도 움직일 법하다. 이는 심리학이나 교육학에서부터 국제관계에까지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전략이기도 하다. ‘매달아 놓은 당근(dangling carrot)’이라는 영어 표현도 있다. 이건 현혹하는 당근일 뿐 실제로는 주지 않을 당근이다. 평양 정권은 지금 어떤 당근인지를 고민하는 걸까?
당근과 채찍 표현 용례는 2차대전 이후의 생산성 향상에 관한 호주 신문 칼럼(“Douglas wilkie's News Sense UK Workers Must Produce More”. The Daily News. 1947.8.5.)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위키피디아). 이처럼 처음에는 주로 경영이나 경제분야의 성과 달성에 사용되었다.
국제정치학에도 비슷한 개념이 사용되는데 문화나 매력이라는 soft power(당근)를 먼저 구사하고 hard power(채찍)는 마지막까지 아끼라는 이론도 나온다. 이는 하버드 대학교 조지프 나이 교수의 설득 개념이다. 힘이나 권력 등으로 ‘강요’하지 말고 문화나 매력을 통한 연성권력으로 ‘설득’하라는 것이다. (Soft Power: The Means to Success in World Politics)
인간의 소유 본성상 세금 역시 성실신고를 확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어서 징세행정 역시 당근과 채찍을 구사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각종 세액공제나 소득공제 등의 당근이 있는가 하면 세금계산서 수수 등에서 보는 것과 같은 가산세나 과태료 등이 그 것이다.
당근이나 소프트파워 접근에서 한 발 더 진화한 개념으로 납세자 신뢰를 확보하는데 성공한 국가도 있다. 과거에 그 나라에서는 국민들이 싫어해서 세무공무원들이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살아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스스로 말한다.
그랬던 국세청이 지금은 국민 신뢰도 조사에서 다양한 기관 중에 1위를 하는 신뢰기관으로 탈바꿈했다. ’15~17’년 연속해 신뢰도 2, 3위인 적십자사나 암네스티(Amnesty)를 10~15% 차이로 압도하고 있다. 소득세나 법인세 세율이 높기로 전세계 5위안에 드는 나라인데도 말이다.
수퍼(super) 고세율 국가에서 적십자를 누르고 신뢰도 최고로 달성했다니 웬지 부조화다. 과연 어떤 대민정책을 구사했을까? 답은 간단했다. 상대방(납세자)의 말을 ‘먼저’ 믿고 존중하는 ‘신뢰우선’ 정책이었다. 질의가 들어오면 적극적, 구체적으로 답해주며 공무원의 이메일까지 공개하여 행정 투명성을 확실히 했다고 한다. 국세청장은 임기내 중립을 지켰고, 과거에 단 한번도 정치적으로 조기 퇴진시킨 적도 없다고 한다. 신뢰와 존중은 개인이든, 사회든, 국가든 모든 관계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접근자세다.
한국의 경우 5월 31일은 소득세 확정신고 마감날이다. 만약 이날까지 신고를 하지 못하면 단 하루를 넘겨도 만만치 않은 가산세를 부과한다. 그날 마침 사정이 생길 수도 있고, 몸이 아파서 신고를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사적 사정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기계적으로 가산세를 내야 한다.
반면에 그 나라에서는 이런 사정을 이야기하면 가산세를 물리지 않는단다. 이유만 말하면 되고 그 사정을 확인하는 증빙을 낼 필요도 없다 한다. 이유는 ‘세정당국이 먼저’ 납세자를 신뢰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납세자가 먼저 세정당국을 신뢰하고 존중하기를 기대하면 백년하청이라는 거다.
물론 기한내 납부한 납세자와의 형평성 차원에서 납부불성실 가산세는 부과한다고 한다. 신고기한을 며칠 넘겼다 해도 이자를 붙인 세금이 납부되면 징세의 궁극적 목적인 세입이 달성된 건데 굳이 거금의 무신고 가산세를 또 물리는 것은 주인에 대한 권력남용이며 ‘신뢰 관계 정립’을 해친다는 거다.
세무조사 역시 납세자와 조사국이 미리 만나 언제, 어디서 세무조사를 해야 할지 상의한다고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정기조사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서면통지한다면 그건 국민을 존중하는 자세가 아니며 신뢰를 이끌어내는 기본을 외면하는 것이라는 거다.
우리의 경우 4~5년에 한번씩 자동으로 정기조사가 이루어지므로 조사가 더 이상 기밀이 아니다. 특정 혐의상 수시조사나 예치조사야 그렇다 치고 차제에 정기조사 시기를 납세자와 미리 상의하는 것은 반드시 벤치마킹할 일이다. 이제는 조사국 운용 편의성보다 정부의 주인인 납세자와의 관계 존중으로 패러다임을 바꾸어서 손해볼 게 없지 않은가.
회사마다 사정이 있고 일정이 있기 마련인데 불시에 시작되는 정기 세무조사는 납세자에게는 매우 일방적이고 부담스럽다. 시급성에서 국가의 존망이 달린 국방의무 이행조차 과세관청보다 더 유연하다. 국방부는 젊은이들이 대학을 마치고 입대할 것인지, 그 전에 할 것인지 선택하게 한다. 어찌 그뿐이랴. 형제가 동시입대를 할 경우에는 같이 배속되도록 하고, 몇 월에 입대할 것인지도 선택하게 한다. 게다가 육·해·공군은 물론 카투사를 선택해 입대할 수 있다.
군대도 이러할진데 우리 세법은 어찌 이리 경직되어 있는가. 납세자들이 야반도주하는 것도 아닌데 ‘정기’조사를 불시에 개시할 이유가 없다. 하루만 늦어도 굳이 무신고 가산세를 매겨야만 하나? 납세자를 진정 나라의 주인으로, 정부를 공복으로 이해한다면 그런 세법은 하루 빨리 바꾸어야 한다. 납세자들은 감히 자신들을 세금 내주는 기부자나 나라의 주인대접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대등한 카운터파트 정도로만 인식하여 준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
아, 신고가 늦어도 무난하게 넘어가고, “조사를 언제 시작할까요?”라고 물어주는 그 나라는 다름 아닌 스웨덴 국세청 이야기다. 조사시기와 장소를 미리 협의하는 나라는 비단 스웨덴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얼마든지 더 있다.